클로드 암시장의 먹이사슬
뉴욕보다 인구가 적은 싱가포르가 전 세계 1인당 Claude 사용량 1위라는 통계가 나왔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알고 보면 좀 재미있다. 거대한 시장 ’중국’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방구석에서든 사무실에서든 자유롭게 Claude를 쓰지만, 중국에는 이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 앤트로픽은 중국의 접속을 막고, 가입 시 전화번호와 해외 신용카드를 요구한다. 최근엔 신분증과 실시간 셀카까지 대조하며 방어막을 겹겹이 세웠다.
하지만 궁하면 통하는 법. 중국 개발자들은 싱가포르를 경유해 Claude에 접속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통계상 싱가포르 사용량으로 잡히는 것이다. 옥스퍼드 China Policy Lab의 Zilan Qian이 이 현상을 분석했다.
더 놀라운 건, 중국이 이 방어막을 뚫고 Claude를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정가의 10분의 1, 심하면 20분의 1 가격에 쓰고 있다는 점이다. 비결은 中转站, 우리말로 ’중계소’라 불리는 중개 서버다. 사용자와 앤트로픽 사이에서, 마치 정상적인 해외 사용자의 요청인 것처럼 대신 전달해준다. 사용자는 위챗페이나 알리페이로 위안화만 내면 되고, VPN이나 해외 카드도 필요 없다. 밀수업자가 국경 검문을 대신 통과해 물건을 배달해주는 것과 비슷하다.
이게 한 사람이나 한 회사의 원스톱 서비스가 아니라 여러 단계로 쪼개진 공급망이다.
맨 위에는 계정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상인, 인증용 외국 번호를 파는 업자, 앤트로픽의 보안 빈틈을 찾는 기술자가 있다. AI로 가짜 신분증을 만들고, 딥페이크로 화상 인증을 통과하고, 그것도 안 되면 아프리카나 남미로 사람을 보내 현지인을 고용해 직접 얼굴 인증을 시킨다. 그다음 단계에 중개소 본체가 있고, 맨 아래에 이걸 사서 쓰는 사람들(개인 개발자, 기업 등)이 있다. 아무도 사슬 전체를 혼자 굴리지 않고 각자 한두 단계만 맡는다. 그래서 이 먹이사슬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한쪽을 막아도 몇 시간이면 새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빈틈을 뚫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쌀까?
-
첫째, 접속권을 싸게 확보한다. 무료 크레딧을 긁어모으고, 안 쓰는 사용량을 되팔고, 비싼 요금제를 여러 명이 나눠 쓴다.
-
둘째, 몰래 바꿔치기한다. 모든 요청이 중개 서버를 거치기 때문에, 사용자는 자기가 진짜 어떤 AI를 썼는지 알 수 없다. 비싼 모델을 시켰는데 겉포장만 바꿔 값싼 모델로 돌려도 알아채기 어렵다.
-
셋째, 사용자가 주고받은 대화 자체가 상품이 된다. 중개 서버를 지나는 모든 질문·답변·작업 과정이 서버에 남고, 이는 다른 AI를 훈련시킬 귀한 재료가 된다.
결국 앞의 둘은 사용자를 끌어당기는 미끼고, 진짜 수익은 여기서 나온다. 사용자는 싼값에 Claude를 쓴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자신의 대화 기록으로 값을 치르는 셈이다.
뚫기로 결심한 사람을
막아낼 방패는 없다.
이 현상을 보면 역시 역사는 반복된다. 뚫기로 결심한 사람을 막아낼 방패는 없다. 담을 높이면 그 담을 넘겨주는 새로운 비즈니스가 생길 뿐이다. 만리방화벽이 오히려 VPN 산업을 키웠던 것처럼.
사실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땐 구조를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림으로 표현하면 대략 아래와 같은데, 100%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회색시장 공급망 구조. 도표 생성: Genspark
세상은 넓고, 별의 별 비즈니스가 다 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이렇게 변화무쌍한 시대에 나는 도대체 어느 위치에 서 있나 하는 생각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