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AI, 실험에서 인프라로
하비(Harvey) AI가 처리한 토큰이 올해 1월 1조 개에서 5월 12~13조 개로 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토큰은 매출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얼마나 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계정을 받아두고 거의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많아도, 실수로 수조 개의 토큰을 쓰는 사람은 없다. 이 정도 규모라면 긴 계약서를 넣어 검토시키고, 여러 문서를 비교·분석하고, 실제 업무를 AI에 맡기고 있다는 뜻에 가깝다.

일러스트 생성: ChatGPT
제품의 성격도 달라졌는데 처음에는 리서치와 초안 작성을 돕는 보조도구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500개의 AI 에이전트를 내놓고 있다. 문장교열이 아니라 업무 단위 자체를 맡기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같은 날 국내 리걸테크 서비스인 ’슈퍼로이어’의 가격정책 변화 소식도 접했다. 에이전트 기능을 출시하면서 기존의 “대화 건수 기준 과금”에서 “사용량 기반의 크레딧 체계”로 전환한다고 한다. AI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커질수록 가격도 사용량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법률은 대표적인 로컬 산업이다. 자격도, 규제도, 시장 구조도 국가마다 다르다. 그래서 해외 리걸테크 뉴스를 보면 “우리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기술의 흐름은 대개 시차를 두고 따라온다. 속도 차이는 있어도 방향은 비슷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계속 지켜보게 된다.
이런 변화속에서 법률가의 역할은 뭘까.
법률서비스에 시간투입량보다 판단을 내리고 그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는지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계약서 검토나 법률실사(LDD) 역시 고객이 비용을 지불하는 이유를 끝까지 따져보면 결국 “최종적인 법률 판단과 그에 대한 책임” 때문이다. 변호사가 노가다 한 만큼(시간 들인만큼) 비용을 지불하는 가격체계는 이미 무너지고 있다.
AI가 초안 작성과 검토, 비교 업무를 더 잘할수록 변호사에게 남는 역할은 오히려 분명해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판단이고, 그 판단에 책임을 지는 일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판단이고,
그 판단에 책임을 지는 일이다.
그래서 이 기사를 읽고 내린 오늘의 결론은? 로펌에서 업무를 수행할 때는 언제나 “명확한 결론”을 내리는 일을 피하지 말자! 애매한 답변으로 책임을 피해가는 자문은 앞으로 가장 먼저 설 자리를 잃을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