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아니면 모를 기자의 세계(1) 살인목격자 찾기
“살인목격자를 찾아 600자 인터뷰 기사를 작성하시오.
제한시간 6시간.”
2011년, 동아일보 3차 실무전형. 생전 처음 신문사 건물 안에 발을 들였다. 오전 9시, 감독관의 신호와 함께 서류봉투를 열었다. 그런데, 살인목격자 인터뷰라니…
…What? なに??? 오 주여…ㅠㅠ
백주대낮에 어디 가서 살인목격자를 찾나. 그런데 살인목격자 만나는 것보다 백수로 사는 게 더 두려웠던 나는, 가방을 메고 시험장을 빠져나왔다.
◆◆◆
‘살인이 벌어질 만한 곳… 서울역 노숙자 무리?’
포장마차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는 무리에게 일단 말을 걸었다. “술값은 제가 낼게요. 살인현장 목격해보신 분 계세요?” 오뎅탕 국물을 함께 떠먹으며 들은 이야기들은 생각보다 훨씬 생생했다. 어느 순간 내가 노숙자 술판 한가운데 앉아있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인터뷰 하나를 끝내고 나니, 한 건만 더 해서 가점을 받고 싶어졌다.
그때, 까마득한 신입생 시절 술자리에서 동아리 선배가 무심코 던진 말이 떠올랐다.
“내 친구가 노고산동에 살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랫집에 살던 게 유영철이었대.”
별로 친하지도 않은 그 선배에게 연락해 친구의 연락처를 받았다. 전화 인터뷰로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피의자 호송 장면 일러스트
일러스트 생성: Google Gemini
노고산동 다세대 주택에서 자취하던 어느 날부터, 비린내가 심하게 났다. 1층 횟집에서 생선 냄새가 올라오나 싶었다. 또 어떤 날은 새벽에 공구리 치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어 항의하러 밖에 나왔는데, 어디서도 공사는 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하루는 주인집 아주머니가 화가 잔뜩 나서 소리쳤다.
“학생, 여자친구 좀 그만 데려와. 물값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와!”
이 모든 이상한 일들이 연쇄살인마의 범행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뉴스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
‘어? 저거 우리 집인데…?’
◆◆◆
두 건의 인터뷰를 마치고 600자 기사를 두 편 작성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원자마다 접근이 달랐다. 현직 기자에게 전화해 “성의만 보여라”는 말을 듣고 그대로 한 사람, ’한낮+살인+목격’을 검색해 실제 사건 현장을 찾아간 사람, 당연히 그냥 취재 동선 짜는 능력만 보려고 테스트를 한 것일거라 생각하고 ’동선’만 그럴싸하게 써서 낸 사람… 방법은 저마다 달랐다.
가끔 타성에 젖어 일할 때, 살인목격자를 찾던 만 25살의 나를 떠올려보곤 한다. 그때는 참 절박했다. 가능성을 재고 따지지 않고, 이건 무조건 해내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길이 보였고, 성과가 났던 그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지금 그렇게 일하고 있나. ’배가 불렀다’는 생각이 들때 이 기억을 떠올려보기위해 기록을 남긴다.
이 글은 2026. 3. 12. 링크드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