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아니면 모를 기자의 세계(3) 호외, 그리고 BTS
오늘 중앙일보가 호외를 찍었다. BTS 때문에.
(그림 속 호외는 중앙일보 영문판)

일러스트 생성: Google Gemini
나에게 호외는 몇 장의 스틸컷 같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고1, 2002년 여름. 대한민국과 미국의 축구경기에서 안정환의 후반 동점골로 16강 진출의 청신호가 켜진 그날. 광화문을 뒤덮은 수만 명의 붉은악마들에게 동아일보는 호외지를 뿌렸다. 제목은 〈잘싸웠다… 16강 반드시 간다〉.
2011년 12월. 입사 교육 중 앞에서 강의하던 선배가 말을 멈췄다. “어? 잠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더니,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김정일 사망. 호외 제작해야 한단다.”
문이 닫히고, 교실이 잠시 얼었다. 얼마 후 윤전기에서 막 나온 호외가 손에 들어왔다.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따끈한 종이였다. 기자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 그날 처음으로 피부로 알았다.
2016년 박근혜 탄핵 호외. 그때는 기자로서 현장에 있었다. 2024년 윤석열 파면 호외. 그때는 이미 민간인(?)으로 구경하는 쪽이었다.
그리고 오늘. BTS.
호외(號外)란, 긴급하거나 중대한 뉴스를 즉시 전달하기 위해 임시로 찍어 거리에서 배포하는 신문이다. 정기 발행과 달리 부정기적으로 나온다. 그래서 ’호외’다. 뉴스 소비가 신문에서 디지털로 옮겨가면서, 종이신문의 발행규모도 축소되었고 그 자연스러운 귀결로써 호외도 보기 힘든 세상 되었다. 오죽하면 오랜만에 등장한 호외 〈윤석열 대통령 파면〉이 굿즈처럼 중고시장에서 거래됐겠나.
그러니까 오늘의 호외는 의미가 크다.
사람들이 더 이상 종이가 아닌 화면으로 세상을 접하는 시대에, 굳이 윤전기를 돌린다는 건 단순한 관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같은 때에 호외를 발행한다는 건 편집국이 내린 하나의 선언으로 보아야 한다. “이 소식은 디지털 푸시 알림 하나로 흘려보내기엔 너무 크다”라고 말이다.
중앙일보는 오늘 〈BTS의 4년 만의 완전체 컴백〉을 그렇게 판단했던 것 같다. 김정일의 사망, 두 대통령의 탄핵에 버금가는 무게, 어쩌면 그 이상으로.
2002년 이후 오랜만에 온 나라가 들썩이는 축제가 호외의 소재가 됐다. 전직 신문기자로서, 그 선택이 괜히 반갑다.
뉴스의 무게를 종이에 새기는 일.
그 자체가 이미 편집이다.
이 글은 2026. 3. 21. 링크드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