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돌처럼 보던 내가 유튜브를 찍었다
의뢰인 경찰조사 입회 도중 쉬는 시간에 링크드인에 들어가보니, “요새 바쁘신지 글을 안 쓰신다”는 1촌님의 메시지가 와있었다. 작두라도 타신 분일까.
지난 2주간(10영업일) 자정넘어 집에 간 날이 6~7일쯤 된다. 그 바쁜 와중에 매우 부담스러운 역할까지 맡았는데, 바로 유튜브 출연이다.
“SNS로 흥한 자, SNS로 망한다”를 금과옥조로 삼았던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기자 시절 SNS가 발목잡아 망한 사람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무법인 로백스의 유튜브요정·크립토여신 Dan Kim 변호사님의 제안으로, 〈기자에서 변호사가 된 썰〉을 진득하게 풀어보는 콘텐츠를 찍게 됐다.

로백스 회의실에 차려진 촬영 현장
본업이 바쁘다보니 솔직히 유튜브는 준비를 거의 못했다. 문답지도 제대로 못 본 채 촬영에 임했는데, 예상 가능한 질문들이었다. 왜 전직했는가, 기자 시절과 무엇이 다른가, 아이 낳고 학교 다니기 힘들지 않았느냐…
그런데 PD님의 마지막 질문은 미처 준비하지 못해 당혹스러웠다.
“늦게라도 무언가 도전하고 싶은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뭐라고 남에게 교훈을 줄까. 〈시험관·출산·육아를 병행하며 기자에서 변호사로 전직하기〉가 인생 목표였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운 좋게 기자가 되었지만 어느 순간 변호사가 되고 싶어졌고, 운 또는 실력이 모자란 탓에 단지 그 길이 남보다 늦어졌을 뿐이다. 그 과정이 외롭지 않게 아이라는 축복이 생겼을 뿐이고.
이런 생각이 머리를 휘감다 보니 제대로 답을 못 했다. 이제야 정리해본다. 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이 말이, ’늦은 나이에 무언가를 도전하는 분들’께도 똑같이 드리고 싶은 말이다.
언젠가 아이를 낳는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최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모든 서포트를 다하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다. 나 역시 그 가치관으로 25살에 기자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 늦어도 너무 늦은 나이에 커리어 전환을 해보니, 그 생각이 완전히 깨져버렸다.
한 해 1700명이 쏟아지는 법조시장에서 ’변호사 라이센스’를 딴 것은 그저 결과일 뿐, 3년의 로스쿨 과정을 통해 얻은 것은 따로 있다. 1점 2점을 놓치지 않으려 밤을 새던 것, 시험 종료령이 울리기 직전까지 한 자라도 더 쓰려고 아등바등하던 것, 30대 후반의 애엄마가 성적 안 나왔다고 울며 끼니를 거르던 그 주책스러운 순간들. 그것들이 내 인생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줬다.
딱 한번 살다가는 인생에 이런 기막힌 경험을 했던 게,
그 잘난 라이센스 한장보다 더 값진 성공이었다.
그래서 내 아이가 나처럼 늦게 돌고 돌아 어딘가에 도착한다 해도 그 정도로 절박하고 열정적인 시간들로 인생을 채울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성공이라고 진심으로 응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곧 ’늦은 나이에 무언가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다.
하여간, 유튜브 촬영은 무사히 마쳤다. 언제 업로드될지는 모르겠지만.
얼핏 촬영된 영상을 곁눈질로 보았는데, 값비싼 메이크업도 애둘 낳은 40넘은 아줌마에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출산 6개월 지난 비참한 외모를 좀 감춰보고자 야심차게 머리까지 볶았는데, ‘이부진이냐’ ‘신세계 이명희냐’ 별 소리를 다 들었다.
데뷔(?)를 이런 몰골로 해도 되나 싶지만, “내 눈 망치는 거 아니고 보는 사람 눈 망치는 거다”라는 뻔뻔함으로 나가기로 했다. 우리 법인 유튜브 계정 구독자가 약 700명쯤이니까, 많이 잡아도 몇 백명 앞에서만 창피하면 된다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
글을 어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세 줄 요약으로 대신한다.
(1) 너무 바빠 글 올릴 시간도 없었습니다.
(2) 유튜브 한 편 찍었는데, 프로필 사진과 매우 다른 애둘맘은 미리 심심한 사과를 올립니다. 저도 프로필 사진처럼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진실을 알려드릴 수 있어 내심 기쁩니다.
(3) 업로드 되면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글은 2026. 4. 21. 링크드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