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계약 읽기(1) 투자를 받기 전에 물어야 할 세 가지

일러스트 생성: Google Gemini
투자 유치가 확정됐다. 계약서가 왔다. 조항이 수십 개고 별지가 몇 장 붙어 있다.
대표가 확인하는 것은 대개 두 줄이다. 투자금액이 얼마인지, 기업가치를 얼마로 봤는지. 나머지는 표준계약서라니까, 다들 이렇게 한다니까 넘어간다.
그 나머지가 앞으로 몇 년 동안 회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정한다.
두 줄과 나머지 전부
투자 논의가 진행되면 텀시트가 먼저 온다. 투자금액, 기업가치, 주식의 종류. 한두 장이다.
여기 사인하면 투자가 확정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텀시트에는 대체로 구속력이 없다. 남는 것은 비밀유지와 배타적 협상 정도다.
본계약은 그다음에 온다. 이때 텀시트에는 한 줄도 없던 조항 수십 개가 따라 들어온다. 회사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투자자의 서면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 다음 라운드에서 기업가치가 떨어지면 기존 투자자가 더 많은 주식을 가져가도록 전환가격을 다시 계산하는 조항, 회사가 약속을 어기면 투자자가 주식을 되사 가라고 청구할 수 있는 조항, 그리고 그 책임의 일부를 대표 개인이 지도록 하는 조항이다.
기업가치는 텀시트에서 정해진다. 회사가 앞으로 무엇을 혼자 결정할 수 없는지는 본계약이 정한다.
투자를 받기 전에 물어야 할 세 가지
계약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 다만 세 가지는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투자로 회사와 대표가 지게 되는 의무는 무엇인가. 투자금을 어디에 쓸 수 있는지, 무엇을 하려면 동의를 받아야 하는지, 무엇을 언제까지 보고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중 어디까지가 회사의 의무이고 어디부터가 대표 개인의 의무인지.
이 투자 뒤에 지분은 어떻게 되는가. 지금 몇 퍼센트가 되는지가 아니라,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 때 몇 퍼센트가 되는지다. 다음 라운드에서 기업가치가 떨어지면, 회사가 팔리면, 상장하면. 각각의 경우에 대표 손에 무엇이 남는지는 계약서를 읽어야 계산할 수 있다.
이 계약이 다음 투자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지금 받아들인 조건이 다음 투자자에게 부담이 되어 라운드 자체가 막히는 경우가 있다. 투자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으므로 이번 계약서는 다음 계약서의 전제가 된다.
이 세 가지를 모른 채 서명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회사와 대표가 계약 위반의 책임을 지게 된다. 몰랐다는 것은 대체로 변명이 되지 않는다.
협상할 수 없다는 오해
표준계약서라는 이름은 못 고치는 문서처럼 들린다. 그렇지 않다.
투자계약은 투자자와 회사가 대등한 지위에서 교섭해 내용을 정하는 계약이다. 표준계약서는 그 교섭의 출발점으로 제시된 권고안이지 확정된 양식이 아니다. 실제로 개정판은 조항마다 어디까지 협의할 수 있는지를 표로 정리해 두었다.
물론 다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환권과 상환권을 누가 갖느냐 같은 것은 투자자가 양보하기 어렵다. 투자자 대부분이 펀드라서 그 권리가 없으면 포트폴리오를 관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사전동의 사항의 범위, 지연배상금 이율, 경업금지 기간, 계약이 끝나는 지분율은 협의의 영역이다.
어디를 고칠 수 있는지 모르면 고쳐 달라고 말하지 못한다. 아는 만큼 협상이 빨라지고, 서로 오해해서 나중에 다투는 일도 줄어든다.
받아 볼 문서는 다섯 가지다
투자계약서는 어떤 방식으로 돈을 받느냐에 따라 갈린다.
우선주 · 배당과 잔여재산분배에서 보통주보다 앞선다. 여기에 보통주로 바꿀 권리와 회사에 되사 달라고 할 권리가 붙으면 상환전환우선주(RCPS)가 된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쓴다. 개정판이 권하는 기본형은 상환권을 뺀 전환우선주다.
보통주 · 창업 초기에 쓴다. 우선주 계약서에서 종류주식에 관한 부분만 빠진다.
전환사채(CB) · 사채다. 이자를 주고 만기에 원금을 갚되, 주식으로 바꿀 권리가 붙는다. 회사가 상환의무를 진다는 점이 다르다.
신주인수권부사채(BW) · 사채는 그대로 두고 신주를 인수할 권리만 따로 붙인다.
조건부지분인수계약(SAFE)과 조건부지분전환사채 · 지금 기업가치를 정하지 않고 다음 라운드로 미룬다. 벤처투자법이 투자 방식의 하나로 받아들였다.
이 중 우선주, 보통주,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는 2편부터 11편에 걸쳐, 마지막 조건부지분인수계약과 조건부지분전환사채는 12편에서 다루기로 한다.
지금이 읽기 좋은 때인 이유
지난 6월 30일 「벤처투자 표준계약 및 해설서」 개정안이 발표됐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스타트업과 투자자, 법률 전문가가 함께 마련한 것이다. 열흘 뒤인 이달 10일에는 해설서 단행본이 나왔다. 한국벤처투자와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펴냈고, 2018년 초판 이후 처음 전면 개정된 것이다.
그동안 법이 여러 번 바뀌었다. 2020년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고, 상법도 개정됐다. 지난해 12월 30일에는 개정 벤처투자법이 시행되면서 투자받은 회사의 의무를 제3자가 연대해 부담하게 하는 행위가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계약서 체계도 그에 맞춰 개편됐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정리한 개정 내용은 여섯 가지다.
계약서가 둘로 나뉘었다. 주식인수계약(SPA)과 주주 간 계약(SHA)을 한 문서에 섞어 쓰던 방식에서 분리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라운드가 쌓이면 투자자끼리 권리가 부딪치기 때문이다. 2편에서 본다.
투자자 전원의 동의가 아니어도 된다. 사전동의를 받으려면 투자자 전원의 도장이 필요했다. 이제 라운드별로 묶어 의결권 주식 총수의 3분의 2면 전원이 동의한 것으로 본다. 투자자가 여럿인 회사에서 결정이 멈춰 서던 문제다. 8편에서 본다.
상환권 없는 전환우선주가 기본이 됐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쓰이던 것은 상환권까지 붙은 상환전환우선주다. 개정판은 상환권을 뺀 전환우선주를 표준안으로 제시한다. 7편에서 그 이유를 본다.
전환가격을 깎는 방식이 바뀌었다. 국내 관행은 새 발행가와 똑같이 맞춰 주는 Full Ratchet이었다. 개정판은 가중평균방식을, 그중에서도 조정 폭이 가장 작은 Broad-based를 권고한다. 창업자 지분이 얼마나 깎이는지가 여기서 결정된다. 6편에서 계산한다.
상장은 노력할 의무로 적혔다. 언제까지 상장하라는 강제 의무가 아니라 노력 의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9편에서 본다.
대표에게 책임을 지우는 범위가 좁아졌다. 회사가 지는 의무를 대표가 전부 함께 지던 구조가 없어졌다. 정해진 사유에 해당하고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을 때만 남는다. 정말 없어졌는지는 11편에서 따진다.
순서를 바꿔 읽는다
개정판은 당연하게도 제1조부터 차례대로 흘러간다. 하지만 이 연재에서는 시각을 달리하여, 돈이 들어오는 순서 그리고 창업자가 유념해야 할 리스크가 큰 내용부터 다룰 예정이다.
1~4편 · 계약서가 왜 둘이 되었는지, 주금을 넣으면 무엇이 확정되는지, 실사에서 한 말이 어떻게 계약이 되는지
5~7편 · 우선주에 붙은 세 가지 권리. 우선권, 전환권, 상환권을 한 편씩. 텀시트에 RCPS 네 글자로 적히는 것들이다
8~10편 · 투자자가 경영에 어디까지 들어오는지, 주식을 언제 팔 수 있는지, 어겼을 때 얼마를 무는지
11~12편 · 대표 개인이 지는 책임, 그리고 초기 투자의 다른 방식
본 편에 뒤이어 나올 2편에서는 그 계약서가 왜 둘이 되었는지를 본다. 주식을 발행하고 인수하는 조건을 정하는 투자계약서(SPA), 그리고 투자가 끝난 뒤 회사와 투자자와 대표가 어떻게 지낼지를 정하는 주주 간 계약서(SHA). 이 둘이다.
협상 테이블에서
기업이 법률행위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를 꼽으라면, 하나는 계약서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이고 다른 하나는 법인인감을 신중하게 찍는 일이다.
이 둘은 사실 같은 말이다. 도장을 신중하게 찍으려면 무엇에 찍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투자계약서는 회사가 살면서 찍는 도장 중 효과가 가장 오래가는 축에 든다. 상장하거나 투자자 지분이 일정 수준 아래로 내려갈 때까지 효력이 이어지므로, 5년이나 10년을 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동안 회사는 임원을 바꿀 때, 사업을 접거나 새로 시작할 때, 자산을 처분할 때마다 이 문서를 다시 펴 보게 된다.
그러니 서명 전에 한 번 읽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 이 연재가 그 읽기를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오늘의 체크포인트
- 텀시트에는 대체로 구속력이 없다. 회사가 무엇을 혼자 결정할 수 없는지는 본계약이 정한다.
- 계약서를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 다만 회사와 대표가 지는 의무, 앞으로의 지분 변화, 다음 투자에 미칠 영향 세 가지는 답할 수 있어야 한다.
- 표준계약서는 권고안이지 확정된 양식이 아니다. 조항마다 고칠 수 있는 폭이 다르다.
- 전환권과 상환권을 누가 갖느냐는 사실상 못 바꾼다. 사전동의 범위, 지연배상금 이율, 경업금지 기간, 계약 종료 지분율은 협의할 수 있다.
- 개정판이 권하는 기본형은 상환권 없는 전환우선주다. 상환권은 선택이다.
- 개정 내용은 여섯이다. 분리형, 집합적 동의, 전환우선주 기본안, 가중평균 리픽싱, IPO 노력의무, 제3자 연대책임 제한.
- 계약서는 조문 번호가 아니라 돈이 들어오는 순서로 읽는 편이 낫다.
투자계약서 조문 구성 보기
제2조 (투자의 선행조건)
제3조 (진술과 보장)
제4조 (거래의 완결)
제5조 (거래완결일 전 해제)
제6조 (본 계약의 효력)
제7조 (계약의 내용변경)
제8조 (통지) 제9조 (비밀유지) 제10조 (세금)
제11조 (일부 무효) 제12조 (준거법 및 분쟁 해결)
제13조·제14조 (특약사항)
별지1. 본건 신주의 종류 및 내용 / 별지2. 진술과 보장
제1조 (목적) 제2조 (본 계약의 효력)
제2장 회사 경영에 관한 사항
제3조 (투자금의 용도 및 제한)
제4조 (기술의 이전, 양도, 겸업 및 신회사 설립 제한)
제5조 (경영사항에 대한 동의권 및 협의권)
제6조 (보고 및 자료제출)
제7조 (회계 및 업무감사, 시정조치)
제8조 (주식매수선택권의 부여)
제9조 (임원의 지명)
제10조 (주주총회 및 이사회 개최 요구)
제11조 (기업공개 및 M&A에 관한 사항)
제3장 주식의 처분에 관한 사항
제12조 (투자자의 주식 처분)
제13조 (이해관계인의 주식 처분)
제14조 (투자자의 우선매수권 및 공동매도참여권)
제4장 계약 위반에 대한 책임
제15조 (주식매수청구권) 제16조 (손해배상 및 위약벌)
제17조 (지연배상금) 제18조 (이해관계인의 책임)
제5장 계약의 일반 사항
제19조 (계약의 종료) 제20조 (계약의 내용변경)
제21조 (권리 및 의무의 양도, 승계) 제22조 (통지)
제23조 (비밀유지) 제24조 (세금) 제25조 (일부 무효)
제26조 (준거법 및 분쟁 해결)
제6장 특약사항
제27조·제28조 (특약사항)
별지. 투자금의 사용용도 및 실사 약정 / (첨부) 퇴사제한 및 영업금지 약정서
이 글은 「창업자를 위한 벤처투자 계약 읽기」 연재의 1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