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계약 읽기(7) 이 돈은 갚아야 하는가

일러스트 생성: Google Gemini
투자를 받은 지 3년이 지났다. 회사는 아직 이익을 내지 못했다. 그런데 투자자에게서 서면이 왔다. 주식을 상환해 달라는 청구다.
통장에는 그만한 돈이 없다. 회사는 어떻게 되는가.
되사 달라고 할 수 있는 권리
우선주에 붙은 세 번째 권리가 상환권이다. 투자자가 회사에 자기 주식을 되사 달라고 청구하는 권리다.
앞의 두 권리와 성격이 다르다. 우선권과 전환권은 주식으로서 갖는 권리인데, 상환권은 투자한 돈을 돌려받는 권리다. 그래서 상환전환우선주를 자본과 부채의 중간에 있는 증권이라고 부른다.
투자자에게는 회사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을 때의 회수 수단이다. 상장도 매각도 어려워 보이면 원금과 이자를 받고 빠지는 길이 필요하다.
6편에서 본 전환권과 짝을 이룬다. 잘되면 전환권을 쓰고, 안되면 상환권을 쓴다.
조문에 적힌 것
② 회사는 본건 종류주식의 주주로부터 상환 청구를 받은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상법 제462조에 따른 배당가능이익의 범위 내에서 이를 상환해야 한다. 투자자의 상환청구가 있었음에도 상환되지 아니한 경우(배당가능이익이 부족해 상환 청구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를 포함함)에는 위 상환기한은 상환이 완료될 때까지 연장되는 것으로 한다.
③ 본건 종류주식의 1주당 상환가액은 본건 종류주식의 1주당 발행가액 및 이에 대해 본건 종류주식의 효력발생일로부터 상환일까지 연 [ ]%의 비율로 계산한 이자에서 이미 지급된 배당금을 차감한 금액으로 한다.
④ 회사는 본건 종류주식의 상환을 위해 다음 각 호에 따른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1. 회사는 상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준비금 감소 등 법률상 가능한 절차를 신속히 이행해야 한다.
2. 본건 종류주식의 주주가 상환권을 행사한 이후, 본건 종류주식의 상환에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이 발생하였음에도 이를 상환에 우선적으로 사용하지 않거나, 제2항의 절차가 가능함에도 이행하지 않는 경우, 회사는 제1항의 금액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을 손해배상과는 별도로 위약벌로서 투자자에게 지급해야 한다.
표준계약서에서 비워 둔 곳이 둘이다. 언제부터 청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율이 몇 퍼센트인지. 이 두 숫자를 협상에서 채운다.
청구 시작 시점은 국내에서 효력발생일로부터 3년으로 적는 경우가 많다. 투자자는 짧게, 회사는 길게 잡고 싶어 한다.
이율은 관행상 연 48퍼센트 선이다. 투자자가 812퍼센트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3년 뒤 상환한다면 원금에 그만큼이 얹힌다.
나머지 숫자는 예시로 채워져 있다. 상환 청구를 받고 60일, 그리고 재원이 있는데도 상환하지 않았을 때 무는 위약벌 50퍼센트다.
상환가액은 발행가액에 이자를 더하고 이미 준 배당금을 뺀 금액이다.
이익이 없으면 상환도 없다
이 편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제2항의 한 구절이다. 상법 제462조에 따른 배당가능이익의 범위 내에서라는 문구다.
상환주식은 회사의 이익으로 소각하는 주식이다. 상법이 그렇게 정해 두었다. 그리고 그 이익은 배당할 수 있는 이익, 즉 순자산에서 자본금과 준비금을 뺀 금액을 말한다.
배당가능이익이 없으면 회사는 상법상 상환을 할 수 없다.
빌린 돈이라면 회사에 돈이 없어도 갚아야 한다. 못 갚으면 채무불이행이다. 상환권은 다르다. 이익이 있어야 이행할 수 있는 의무다. 이것이 사채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과 지분으로 조달하는 것의 결정적인 차이다.
다만 한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 상법이 상환을 제한한다는 것과, 상환하지 못한 것이 계약 위반이 아니라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이익이 없어 상환하지 못했을 때 그것을 계약 위반으로 볼지, 누구에게 귀책이 있다고 볼지, 손해배상 책임이 따르는지는 계약을 어떻게 썼느냐에 달려 있다. 뒤에서 볼 재원 확보 의무가 바로 그 지점을 겨냥한 조항이다.
왜 이렇게 정해 두었는가. 3편에서 본 자본충실의 원칙이 여기서도 작동한다. 이익이 없는데 주주에게 돈을 내주면 회사 재산이 줄고, 그 손해는 회사와 거래한 채권자들이 진다. 그래서 상법은 이 제한을 강행규정으로 두었다. 당사자가 합의해도 넘을 수 없다.
첫머리의 상황으로 돌아가면, 이익을 내지 못한 회사는 상환청구를 받아도 곧바로 지급할 수 없다. 조문도 그 경우 상환기한이 연장된다고 적어 두었다.
그런데 재원을 만들라는 조항이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제4항이 회사에 의무를 하나 더 지운다. 상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준비금 감소 등 절차를 신속히 이행하라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상법은 자본준비금과 이익준비금의 합계가 자본금의 1.5배를 넘으면, 주주총회 보통결의로 그 초과분을 줄일 수 있게 해 두었다. 준비금을 줄이면 배당가능이익이 생긴다.
투자를 여러 라운드 받은 회사는 주식발행초과금이 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액면가 500원짜리 주식을 10만 원에 발행하면 차액이 전부 자본준비금이 되기 때문이다. 장부상으로는 배당가능이익이 없는데, 준비금을 감액하면 만들어질 수 있는 상황이 생긴다.
투자자는 이 절차를 밟으라고 요구할 수 있고, 회사가 밟지 않으면 제4항 제2호에 따라 위약벌을 문다. 예시 문구는 상환금액의 50퍼센트다.
그러니 “이익이 없으면 상환의무도 없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이익을 만들 수 있는데 만들지 않는 것은 별개의 위반이 된다. 상환권을 검토할 때 회사의 준비금 구조를 함께 봐야 하는 이유다.
특별상환이라는 이름의 조항
계약서에 따라서는 상환권 아래에 조항이 하나 더 붙는다. 이름은 기한 전 상환청구, 조기상환권, 특별상환 등으로 다양하다.
둘을 구분해야 한다.
앞의 것은 위약 사유가 생겼을 때 정해진 시점 전에도 상환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기한의 이익을 잃게 하는 것이고, 협의로 정할 수 있는 사항이다.
문제는 뒤의 것이다. 배당가능이익이 있는지 따지지 않고 상환하라는 조항이다. 상법이 강행규정으로 정한 제한을 계약으로 넘으려는 것이므로 무효로 판단될 가능성이 크다. 주주평등의 원칙, 자기주식 취득 제한, 배당가능이익 제한을 한꺼번에 건드린다.
다만 무효라고 해서 마음을 놓을 일은 아니다. 무효 여부는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확정된다. 그때까지 회사는 상환하지 않은 것이 계약 위반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로 버텨야 하고, 그 사이에 손해배상이나 위약벌 청구가 함께 들어온다. 계약서에서 아예 빼는 것이 정답이다.
상환을 청구했다고 주주가 아닌 것은 아니다
실무에서 자주 다투는 지점이 하나 있다. 투자자가 상환을 청구했는데 회사가 대금을 다 주지 못한 상태에서, 그 투자자는 여전히 주주인가.
대법원은 정관이나 주식인수계약에 특별히 정한 바가 없으면 주주가 상환금을 지급받을 때까지는 상환권을 행사한 뒤에도 여전히 주주의 지위에 있다고 보았다. 상환권을 행사하면 회사는 상환금 지급의무를, 주주는 상환금 지급과 동시에 주식 이전의무를 부담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대법원 2020. 4. 9. 선고 2017다251564 판결)
회사 입장에서는 상환 청구를 받은 뒤에도 그 투자자가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하고 배당을 받는다는 뜻이다. 상환가액 산정 방식과 지급 시기, 그리고 상환이 끝나기 전까지 그 주식의 권리를 어떻게 볼 것인지를 계약서와 정관에 적어 두어야 다툼이 줄어든다.
장부에서는 부채로 잡힌다
법적으로 빚이 아니어도 회계에서는 다르게 볼 수 있다.
일반기업회계기준에서는 상환전환우선주를 자본으로 분류하지만, 국제회계기준에서는 부채로 분류한다. 상장을 준비하면서 국제회계기준을 적용하게 되면 그동안 자본이던 것이 갑자기 부채가 된다. 부채비율이 나빠지고 신용평가와 후속 차입에 영향을 준다.
법률상 의무와 회계상 표시가 어긋나는 대목이다. 실질은 지분인데 장부에는 빚으로 적히는 셈이다.
그래서 권고안은 상환권을 뺐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모으면 개정판이 왜 상환권 없는 전환우선주를 기본형으로 권하는지가 보인다.
이익이 있을 때만 성립하는 의무이니 투자자에게도 확실한 회수 수단이 아니다. 그리고 이익이 날 만큼 성장한 회사라면 투자자는 대개 상환보다 전환을 택한다. 주식 가치가 상환가액보다 높을 테니 당연하다. 실제로 상환권이 행사되는 경우는 제한적이다.
반면 회사에는 부담이 남는다. 회계상 부채로 잡히고, 준비금 감액 요구를 받고, 특별상환 조항이 붙으면 소송 위험까지 진다.
해외에서는 초기 기업 투자에서 상환권을 빼는 흐름이 자리 잡았고 국내에도 반영되고 있다. 개정판의 기본형은 상환권을 결합하지 않은 전환우선주이고, 상환권은 선택 사항이다.
본 편으로 우선주에 붙은 세 가지 권리를 다 보았다. 뒤이어 나올 8편부터는 주주 간 계약서로 넘어간다. 투자가 끝난 뒤 회사가 무엇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 되는지, 그 범위를 조문 그대로 따진다.
협상 테이블에서
상환권이 붙는다면 회사가 볼 곳은 넷이다.
청구 시작 시점을 늦추는 것. 투자자는 3년을 요구하지만 5년에서 7년으로 협의할 수 있다. 회사가 성장할 시간을 확보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이율을 낮추는 것. 연 812퍼센트를 요구받았다면 35퍼센트 선을 제시해 볼 수 있다. 상환이 오래 미뤄질수록 이 차이가 커진다. 이율과 함께 복리인지 단리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같은 연 8퍼센트라도 5년이 지나면 복리 쪽이 눈에 띄게 크다.
분할 상환을 미리 합의해 두는 것. 한 번에 나가는 현금을 나누면 유동성 관리가 가능해진다.
특별상환은 배제하는 것. 배당가능이익을 따지지 않고 상환하라는 조항은 위법 소지가 있다. 넣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상장하면 상환권이 어떻게 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표준계약서는 존속기간 규정을 통해 이 문제를 정리해 두었다. 존속기간이 끝나면 우선주가 보통주로 자동 전환되므로 상환권도 함께 사라진다. 다만 상환청구 후 상환이 완료되지 않으면 존속기간이 연장된다는 예외가 붙어 있으니, 그 문구가 빠지지 않았는지 함께 본다.
그리고 계약 전에 계산해 볼 것이 있다. 지금 준비금이 얼마나 쌓여 있고, 감액하면 배당가능이익이 얼마나 생기는지. 상환 청구가 들어왔을 때 회사가 실제로 어떤 처지에 놓이는지는 그 숫자로 결정된다.
오늘의 체크포인트
- 상환권은 투자자가 회사에 주식을 되사 달라고 청구하는 권리다. 잘되면 전환권, 안되면 상환권이다.
- 상환은 배당가능이익의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 상법이 정한 제한이다. 다만 상환하지 못한 것이 계약 위반인지는 계약을 어떻게 썼느냐에 달린 별개의 문제다.
- 다만 계약서는 준비금을 감액해 재원을 만들 의무를 함께 지운다. 이행하지 않으면 위약벌이 붙는다.
- 자본준비금과 이익준비금의 합계가 자본금의 1.5배를 넘으면 주주총회 보통결의로 초과분을 줄일 수 있다. 주식발행초과금이 쌓인 회사는 이 지점을 미리 계산해 두어야 한다.
- 위약 사유가 생겼을 때의 기한 전 상환청구는 협의 사항이지만, 배당가능이익을 따지지 않는 특별상환은 무효 소지가 크다. 계약서에서 빼는 것이 원칙이다.
- 정관이나 계약에 달리 정한 것이 없으면, 상환을 청구했다는 사정만으로 주주의 지위를 잃지는 않는다. 상환금을 받을 때까지 주주로 남는다.
- 국제회계기준에서는 상환전환우선주가 부채로 분류된다. 상장 준비 단계에서 부채비율에 영향을 준다.
- 상환권이 붙는다면 청구 시작 시점, 이율과 복리 여부, 분할 상환, 특별상환 배제 네 가지를 본다.
- 개정판의 기본형은 상환권 없는 전환우선주다. 상환권은 선택 사항이다.
관련 조문 전문 보기
③ 회사는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주주가 회사에 대하여 상환을 청구할 수 있는 종류주식을 발행할 수 있다. 이 경우 회사는 정관에 주주가 회사에 대하여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뜻, 상환가액, 상환청구기간, 상환의 방법을 정하여야 한다.
1. 자본금의 액
2. 그 결산기까지 적립된 자본준비금과 이익준비금의 합계액
3. 그 결산기에 적립하여야 할 이익준비금의 액
4.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미실현이익
이 글은 「창업자를 위한 벤처투자 계약 읽기」 연재의 7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