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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투자 계약 읽기(12) SAFE와 전환사채, 무엇이 다른가

김수연 변호사 · 2026.08.06

갈림길의 표지판

일러스트 생성: Google Gemini

창업한 지 넉 달이 됐다. 매출은 없고 제품은 만드는 중이다. 그런데 투자자가 관심을 보인다.

여기서 막힌다. 회사 가치를 얼마로 볼 것인가. 재무제표에 쓸 만한 숫자가 없고 사업 모델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른다. 창업자는 높게 부르고 투자자는 낮게 부르는데 어느 쪽도 근거를 대기 어렵다.

값을 매기지 못해 투자가 늦어지는 상황을 풀려고 만들어진 방식이 있다.

◆◆◆

값을 나중에 매기는 방법

지금 정하지 말고 미루자는 것이다.

투자자가 돈을 먼저 넣는다. 회사는 그 돈으로 제품을 만들고 시장에 내놓는다. 시간이 지나 다음 라운드가 오면 그때는 값을 매길 수 있다. 매출이 나왔든 사용자가 모였든 판단할 재료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 시점의 기업가치에 연동해서, 먼저 들어온 투자자의 지분을 그때 확정한다.

미국에서 와이콤비네이터가 2013년 말에 만든 SAFE(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y)가 이 방식이다. 이름 그대로 미래의 지분을 위한 간단한 계약이다. 그 전부터 쓰이던 컨버터블노트(Convertible Note)도 취지가 비슷하다.

창업자에게는 값이 낮게 매겨져 지분이 과하게 희석되는 것을 막아 주고, 투자자에게는 먼저 들어온 위험을 보상해 주는 구조다.

그런데 그대로는 못 들여왔다

한국에 이 방식을 옮기려 할 때 벽이 하나 있었다.

SAFE나 컨버터블노트는 투자자가 권리를 행사하면 그것만으로 주식을 받는 구조를 전제한다. 6편에서 본 전환권처럼 형성권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대법원은 신주 발행은 상법이 정한 방법과 절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회사가 돈을 빌리면서 채권자가 만기까지 언제든 대여금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한 약정이 문제된 사건에서, 대법원은 그것이 상법이 정한 방법과 절차에 의하지 않은 신주 발행을 예정하는 것이어서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07. 2. 22. 선고 2005다73020 판결).

계약만으로 주식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다른 길을 택했다.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에 투자의 한 유형으로 넣되, 요건을 붙였다. 법이 정한 요건을 지켜 계약하면 그것을 벤처투자의 한 방식으로 인정해 주는 구조다.

다만 이것도 계약일 뿐이다. 계약을 맺었다고 주식이 자동으로 생기지는 않는다. 나중에 실제로 주식을 발행할 때는 상법과 정관이 정한 증자 절차를 그대로 밟아야 한다. 이사회 결의를 거치고, 주주가 아닌 사람에게 배정하는 것이니 경영상 목적이 있어야 하고, 납입기일 2주 전까지 주주에게 알려야 한다.

판례가 문제 삼은 것을 피해 가는 구조가 아니라, 계약 단계와 발행 단계를 나누어 발행 단계에서는 상법 절차를 그대로 따르는 구조다.

두 가지가 들어왔다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이 먼저다. 2020년 8월 벤처투자법 시행과 함께 도입됐다. 상환만기일이 없고 이자가 발생하지 않는 계약이다. SAFE에 대응한다.

요건은 셋이다.

투자금이 먼저 지급된 뒤 후속 투자에서 결정된 기업가치 평가와 연동해 지분이 확정될 것. 이것이 이 방식의 핵심이다.

투자받는 회사가 계약 당사자가 되고, 그 계약에 대해 주주 전원의 동의를 받을 것.

이 계약을 맺은 회사가 이후 자본 변동을 가져올 수 있는 계약을 맺을 때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이 체결된 사실을 상대방에게 문서로 고지할 것.

조건부지분전환계약이 그다음이다. 2023년 12월에 시행됐고 컨버터블노트에 대응한다. 무담보전환사채의 발행을 미리 약정하는 계약이다.

요건이 다섯인데 앞의 것과 겹치는 부분이 많고, 다른 점이 둘 있다.

전환사채 발행 계약이 체결되면 그때까지의 원리금 지급 의무가 소멸한다. 사채로 전환되는 시점에 그 전까지의 이자 부담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계약기간 안에 후속 투자가 결정되지 않으면 회사가 원리금을 상환해야 한다. 여기가 조건부지분인수계약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앞의 것은 후속 투자가 없으면 지분으로 바뀌지 않을 뿐이지만, 뒤의 것은 돈을 갚아야 한다. 다만 계약기간은 당사자가 협의해 늘릴 수 있다.

주주 전원의 동의라는 관문

두 방식 모두 주주 전원의 동의를 요건으로 한다. 이 요건이 실무에서 가장 걸린다.

일반적인 신주 발행은 이사회 결의로 한다. 이사가 셋보다 적으면 주주총회 결의로 갈음한다. 그런데 이 계약들은 당장 주식을 발행하지 않으므로 상법이 요구하는 발행 절차가 없다.

대신 나중에 지분이 확정될 때 기존 주주의 지분이 희석된다. 지금은 아무 일도 없어 보이는데 나중에 영향이 온다. 그래서 법은 이사회가 아니라 주주 전원의 동의를 요구한다.

이사회 결의보다 훨씬 무거운 요건이다. 주주가 늘어난 회사일수록 어렵다. 이 방식이 창업 초기에 쓰이는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다.

고지의무도 같은 취지다. 이 계약을 맺어도 법인등기부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등기를 보고는 이런 계약이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나중에 자본 변동이 생길 만한 계약을 맺을 때 상대방에게 문서로 알리도록 했다.

할인율과 가치평가 상한

지분을 얼마나 받을지는 두 가지 장치로 정해진다.

할인율(Discount Rate) 은 후속 투자자보다 싸게 사는 비율이다. 후속 라운드에서 정해진 기업가치에 할인을 적용해 그만큼 낮은 가격으로 주식을 받는다. 실무에서 15~20퍼센트 선이 언급되지만 실제로는 다양하다. 회사 입장에서는 할인율이 과도해지지 않도록 봐야 한다.

가치평가 상한(Valuation Cap) 은 기업가치를 아무리 높게 매겨도 이 금액까지만 인정한다는 한도다. 회사가 크게 성장해 다음 라운드 가치가 뛰면, 먼저 들어온 투자자는 상한 금액을 기준으로 계산해 훨씬 많은 주식을 받는다.

둘 다 정할 수도 있고 하나만 정할 수도 있다. 둘 다 있으면 투자자에게 유리한 쪽이 적용된다.

회사가 잘될수록 먼저 들어온 투자자의 지분이 커진다. 6편의 리픽싱과 방향은 다르지만, 창업자가 미리 계산해 봐야 한다는 점은 같다.

다섯 갈래를 나란히 놓으면

1편에서 투자계약서가 다섯 가지라고 했다. 열두 편을 거쳤으니 이제 정리할 수 있다.

방식 성격 상환의무
우선주 배당·청산 우선권에 전환권, 경우에 따라 상환권이 붙는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쓴다. 배당가능이익 범위 안에서만
보통주 특별한 권리가 붙지 않은 주식이다. 창업 초기에 쓴다. 없음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사채에 주식으로 바꾸거나 인수할 권리가 붙는다. 있음
조건부지분
인수계약
값을 후속 라운드로 미룬다. 이자도 만기도 없다. 없음
조건부지분
전환계약
값을 미루되 전환사채 발행을 약정한다. 후속 투자가 없으면 상환

고를 때 물어볼 것은 셋이다. 회사가 돈을 갚아야 하는가. 지금 값을 매겨야 하는가. 투자자가 경영에 어디까지 들어오는가.

앞의 둘은 표에서 갈린다. 세 번째는 8편에서 본 동의권과 협의권의 문제인데, 어떤 방식을 택하든 주주 간 계약서가 따라붙으면 비슷하게 적용된다. 투자 방식이 다르다고 경영 관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연재를 마치며

3주 남짓 열두 편을 썼다. 계약서 한 부를 열두 번에 나누어 읽은 셈이다.

1편 · 투자를 받기 전에 물어야 할 세 가지
2편 · 계약서가 왜 둘로 나뉘었나
3편 · 주금을 넣고 나면 물릴 수 없다
4편 · 실사에서 말했어도 소용없다
5편 · 우선주는 무엇이 우선인가
6편 · 전환권과 리픽싱의 계산법
7편 · 이 돈은 갚아야 하는가
8편 · 동의 없이 한 결정은 무효인가
9편 · 창업자는 주식을 팔 수 없다
10편 · 위약벌은 깎아주지 않는다
11편 · 연대보증은 사라졌나
12편 · SAFE와 전환사채, 무엇이 다른가 (이 글)

되짚어 보면 같은 이야기가 여러 번 나왔다. 회사가 계약을 어겨도 회사가 한 행위 자체는 대개 유지된다는 것이다. 주금이 납입되면 해제할 수 없고, 동의 없이 한 결의도 효력이 있고, 절차를 어기고 판 주식도 제3자에게 유효하게 넘어간다. 회사법이 회사를 두 사람 사이의 계약이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인이 얽힌 단체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임은 다른 통로로 온다. 매수청구권, 위약벌, 지연배상금. 그리고 회사가 감당하지 못하면 창업자 개인에게 간다.

2026년 개정은 그 통로를 좁히는 방향이었다. 연대보증을 법으로 제한하고, 리픽싱 방식을 창업자에게 덜 불리한 쪽으로 바꾸고, 투자자 한 명의 반대로 회사가 멈추지 않도록 동의 요건을 완화했다. 계약서가 창업자 쪽으로 한 걸음 움직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표준계약서는 출발점일 뿐이다. 실제로 오가는 계약서는 이보다 강한 경우가 많고, 어디까지 조정할 수 있는지는 결국 읽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법은 계속 바뀔 것이고 분쟁도 쌓일 것이다. 새로운 판결과 다음 개정이 나오면 이 연재는 그것을 추적하는 기록으로 이어 가려 한다.

◆◆◆

협상 테이블에서

열두 편을 통해 확인한 것을 조항 순서로 한 번 더 정리한다. 계약서를 받았을 때 이 순서로 짚으면 된다.

돈이 들어오기까지. 선행조건에 정관 변경이나 인허가가 들어 있으면 일정부터 확인한다. 기존 계약서에 주주 구성이 바뀔 때 상대방 동의를 받으라는 조항이 있는지 본다. 진술과 보장의 예외는 빠짐없이 공개목록에 적는다.

주식의 내용. 배당률을 발행가액에 곱하는지 액면가액에 곱하는지 확인한다. 리픽싱은 Broad-based 가중평균방식을 유지하고 스톡옵션 예외를 넣는다. 상환권이 붙는다면 개시 시점과 이율, 복리 여부를 본다. 특별상환은 넣지 않는다.

투자 이후. 동의 사항과 협의 사항의 구분을 보고, 금액 기준이 회사 규모에 맞는지 확인한다. 사내 결재 절차에 투자자 통지를 심어 둔다. 창업자가 주식을 처분할 계획이 있다면 계약 단계에서 특약으로 넣는다.

어겼을 때. 매수청구권의 발생 사유를 좁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치유 기간을 넣고, 이율을 낮추고, 위약벌 금액을 협의한다. 창업자 개인에 대한 청구는 법이 정한 사유와 고의·중과실로 한정한다.

끝날 때. 계약 종료 기준이 되는 지분율을 올린다. 경업금지 기간과 범위를 조정한다.

그리고 서명 전에 한 번은 계산해 봐야 한다. 다음 라운드에서 값이 떨어지면 지분이 어떻게 되는지, 회사가 팔리면 손에 얼마가 남는지. 계약서에 적힌 조건들은 그 숫자로 확인될 때 비로소 이해된다.

오늘의 체크포인트

  • 조건부지분인수계약과 조건부지분전환계약은 지금 기업가치를 정하지 않고 후속 라운드로 미루는 방식이다.
  • 계약만으로 주식이 생기지는 않는다. 대법원은 신주 발행이 상법이 정한 방법과 절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계약 단계와 발행 단계가 나뉘고, 발행 단계에서는 이사회 결의와 제3자 배정 요건을 갖춰야 한다.
  • 두 방식 모두 주주 전원의 동의가 요건이다. 이사회 결의보다 훨씬 무겁다.
  • 법인등기부에 남지 않으므로, 자본 변동을 가져올 계약을 맺을 때 상대방에게 문서로 고지해야 한다.
  •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은 후속 투자가 없으면 지분으로 바뀌지 않을 뿐이지만, 조건부지분전환계약은 원리금을 상환해야 한다. 다만 계약기간은 당사자가 협의해 연장할 수 있다.
  • 지분은 할인율과 가치평가 상한으로 정해진다. 둘 다 있으면 투자자에게 유리한 쪽이 적용된다.
  • 투자 방식을 고를 때 물을 것은 셋이다. 회사가 갚아야 하는가, 지금 값을 매겨야 하는가, 투자자가 경영에 어디까지 들어오는가.
  • 어떤 방식이든 주주 간 계약서가 따라붙으면 경영 관여의 내용은 비슷하다.
관련 조문 전문 보기
법률 ·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3조(조건부지분인수계약의 요건) 법 제2조제1호라목에서 "중소벤처기업부령으로 정하는 요건"이란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말한다.
1. 투자금액이 먼저 지급된 후 후속 투자에서 결정된 기업가치 평가와 연동하여 지분이 확정될 것
2. 조건부지분인수계약에 따른 투자를 받는 회사가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의 당사자가 되고, 그 계약에 대해 주주 전원의 동의를 받을 것
3.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을 통해 투자를 받은 회사가 자본 변동을 가져오거나 가져올 수 있는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이 체결된 사실을 해당 계약의 상대방에게 문서로 고지할 것
법률 ·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3조의2(조건부지분전환계약의 요건) 법 제2조제1호마목에서 "중소벤처기업부령으로 정하는 요건"이란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말한다.
1. 투자금액이 먼저 지급되고 계약기간 내에 후속 투자에서 결정된 기업가치평가와 전환의 조건을 연동하는 무담보전환사채 발행 계약 체결을 약정할 것
2. 조건부지분전환계약에 따른 투자를 받는 회사가 조건부지분전환계약의 당사자가 되고, 그 계약에 대해 주주 전원의 동의를 받을 것
3. 제1호에 따른 무담보전환사채 발행계약이 체결되면 조건부지분전환계약일부터 무담보전환사채 발행계약일 전까지에 해당하는 기간에 대한 원리금 지급 의무가 소멸할 것
4. 계약기간 내에 후속투자가 결정되지 않는 경우 투자를 받은 회사는 계약에 따른 원리금을 투자자에게 상환할 것. 이 경우 계약기간은 계약 당사자 간 협의하여 연장할 수 있다.
5. 조건부지분전환계약을 통해 투자를 받은 회사가 자본 변동을 가져오거나 가져올 수 있는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조건부지분전환계약이 체결된 사실을 해당 계약의 상대방에게 문서로 고지할 것

이 글은 「창업자를 위한 벤처투자 계약 읽기」 연재의 12편이자 마지막 편입니다.